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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일기

정치가 변해야 기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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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점에 가보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날마다 달라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서점에 진열 된 기후변화 연구서의 숫자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관련 서적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공부를 늦게나마 열심히 해서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칼럼쓰기 숙제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미국 행정부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으며 미국 연방의회도 탄소가스감소법안(소위 cap and trade bill)을 심의 중에 있다. 위 법안은 이미 미국 하원을 통화하였고, 현재 상원의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으나 현재의 미국 분위기상 상원에서도 유사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본다. 열렬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전 부통령 엘 고어는 내년 초에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측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분위기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부시 대통령 시절의 미국 행정부는 기후변화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가 기후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유는 주로 경제적인 파급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행동으로 촉발된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도 없는데 온실가스배출을 규제하게 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국 선거에서 공화당에 불리하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제논리가 정치의 발목을 잡았고, 다시 정치논리가 기후변화를 애써 무시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에 관한 미국의 분위기가 급변한 이유는 정치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백악관과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정치가 인간사회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사회적 의제를 제대로 상정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여야 인간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이 보장된다. 정치란 공동체의 의사결정절차를 의미하므로, 공동체 구성원의 합리적인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어야 올바른 민주정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 원인으로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금권정치요, 다른 하나는 특수이해집단의 로비에 따른 국민대표성의 왜곡이다. 정치가 정치공동체의 정당한 이익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이 생명줄인 정치인으로서는 막대한 정치자금 제공자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고 강력한 로비력을 가진 특수이해집단은 정치인을 움직이기 위하여 모든 연줄과 자금을 총동원한다. 그리하여 돈과 특수이해집단의 이익은 과다하게 국정에 반영되는 반면에 따라서 돈도 없고 대변자도 없는 정당한 의제는 제대로 국정에 반영되기 어렵게 된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에 있어서도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업체들의 정치적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사업체는 대체에너지의 개발보다는 석유자원의 개발을 찬성하는 정치인을 적극 후원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하여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의 연구에 집중적인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회의론자들은 기후변화론자들의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고 기후변화론은 공상에 불과하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의적 분위기를 가리켜 ‘만들어진 의심론’(Manufactured Doubt)이라고 부르면서 회의론의 파상공세(Sea of Denial)가 만만치 않음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대부분의 기후학자들은, 인간의 활동 때문에 기후변화가 촉진되었고, 그로 인한 폐해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이 과학자의 견해와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폐해(해수면 상승, 자연재해의 대규모화)가 경험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너무 늦기 전에 행동을 취하여야 하는데도. 100%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회의론에 좌우되어 실수를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뿐인 지구를 떠나서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를 망치느냐, 경제를 망치느냐를 놓고 선택하는 경우 지구를 망치도록 선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환경문제는 한국 정치의 뜨거운 감자이다. 환경은 거시적, 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고려할 사안이지 행정편의적 입장에서 미시적, 단기적으로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다. 환경은 자손대대로 물려 줄 자원이며 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의 보존과 개발문제에 관하여는 국민들의 신중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불도저식 밀어붙이기파와 결사반대파가 길거리에서 부딪히는 오염된 정치환경을 정화하고, 국민적 합의의 도출방법이 연구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가 변화하여야 한다.

영어식 표현으로 Sea Change는 비유적으로 커다란 변화, 즉 상전벽해(桑田碧海)를 뜻한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생기는 Sea Change에 대처하기 위해 정치의 Sea Change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글을 쓰신 박덕희 변호사님은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