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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일기

엘니뇨와 라니냐의 장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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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수온 측정결과 ©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가뭄은 배고픔을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단어이다. 60년대와 70년대에 가뭄이 오면 물 부족이 식량 부족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뉴월 파종기에 쩍쩍 벌어진 천수답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도 식구(食口)들 걱정에 시커멓게 타들어 갔었다. 비가 오지 않는 때에는 하늘에도 구름 한 점 없어 뜨거운 태양열이 농부의 울화통을 더욱 자극하곤 하였다.

경험적으로 기온의 상승(지구온난화)은 가뭄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기후변화의 문제점으로 가뭄을 언급하는 예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뭄은 장기간에 걸쳐 조용히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가 어렵고, 그 원인도 주로 자연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기후변화의 부정적 결과로 주로 이야기하는 홍수, 빙하의 해빙, 해수면 상승 등이 물 과잉을 의미하는 데에 비하여, 가뭄은 물 부족을 의미하여 어쩐지 모순되는 현상 같기도 하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듯이 기후변화는 물 과잉을 가져오기도 하고, 물 부족을 가져오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빙하시대(Ice Age)가 끝나게 되었고 인간의 거주가능지역이 넓어졌으며, 나일강이나 황하의 주기적인 범람은 농토를 비옥하게 해주어 문명발달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무조건 악(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인위적인 요소로 인하여 발생한 비정상적인 기후변화가 인간과 자연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일 뿐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물 부족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2005년도에 한 유네스코의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이 매우 부족한 형편이고, 그나마도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11억의 인구가 식수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고, 26억의 인구가 기본적 위생수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식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유네스코는 경고하고 있다.

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의 인류학 명예교수인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은 「The Great Warming」 (2008년 발간)이라는 책에서 ‘가뭄을 조용히 다가오는 코끼리(The Silent Elephant)의 위협’으로 비유하고 있다. 표면상 위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무시하였다가는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코끼리의 발에 깔려 압사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뉴멕시코에 있는 차코 캐년(Chaco Canyon) 문명과 캄보디아의 앙코로 와트 문명이 기원 후 12세기경 발생한 가뭄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가뭄이 멸망의 유일한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가뭄으로 인하여 마야 문명도 멸망하게 되었고, 중국에서도 많은 아사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에 유럽에서는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어 풍작을 거둘 수 있었고 유럽인들은 그린란드나 북아메리카 등 외부 세계로 활발한 진출을 하게 되었다. 서기 800년에서 1300년 사이의 온난한 시기를 중세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로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에 발생한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유럽인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한 반면에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문명들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중세시기에 일어난 지구온난화의 규모와 원인은 현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다. 중세에는 기온상승의 정도가 현재보다 미미하였고 주로 자연적인 현상으로 기온이 상승하였으나, 현재의 온난화는 화석연료의 급격한 사용으로 인하여 주로 발생한 것이고 기온상승의 정도가 중세의 그것보다 훨씬 가파르다.

기후변화가 중세 동서양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기후변화에 누가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속도에 대하여는 전 지구적인 대처가 필요하겠지만, 기후변화에 대응 혹은 적응하는 노력은 개별 국가에 따라 달라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물 부족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우리도 이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기후변화가 특히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강구하여 중장기적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과민방응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태풍이 잘 오지 않은 것도 엘니뇨와 라니냐의 장난 때문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 글을 쓰신 박덕희 변호사님은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