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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정책 뒤집어보기

거꾸로 가는 정부의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사업

 

청와대는 매일같이 녹색성장 타령이고, 지경부와 에너지관리공단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했네, 예산을 얼마나 증액했네 언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기업들도 재생가능에너지 관련 산업에 뛰어든다는 선언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언론에 난 기사만 보면 마치 한국의 에너지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듯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공부를 위해 머물고 있는 독일의 재생가능에너지 정책과 한국의 것을 비교하면 할수록 우리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식, ‘보여주기식정책의 실체를 접하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하지 않다. 심지어 어떤 정책은 효율성과 목표 달성 측면에 있어서 독일의 성공 사례와는 완전히 역행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폐기하고 2012년부터 의무할당제(RPS)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사업이 그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6,791억 원이다. 연구개발(R&D)예산 2,395억을 제외하고, 그린홈 100만호 프로젝트를 포함한 보급사업에 4,396억 원이 배정되었다. 이 보급사업 중 993억 원은 12,000가구에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매스 시설을 보급하는 데 투입된다. 이미 2002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기준가격으로 매입하는 정책이 시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별도로 초기 설치비의 최대 60% 가량을 무상 지원해 태양광 발전기 설치를 지원하는 또 다른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중구난방 지원정책이랄까.


여기, 한국의 지원 정책과는 정반대의, 정부 입장에서는 특별한 예산 투입 없이 손 안 대고 코 푸는 정말 놀라운정책이 있다.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NRW) ().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던, 독일 석탄 생산의 중심지다. 1990년대 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정부와 주 에너지 공사는 ‘50 태양주택단지 프로젝트(50 Solarsiedlungen in Nordrhein-Westfalen)’(이하 ‘5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태양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50개의 주택단지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고, 에너지절약 건축기법을 통해 건축물의 에너지 수요를 줄임과 동시에 태양에너지를 통해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택단지를 곳곳에 보급하는 것이 이 사업의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예산을 투입해 시행하는 상명하복 식의 사업이 아니라, 그 반대로 주정부는 관련 기준만 만들어 놓고 일반 시민이나 건축주들이 관련 기준을 충족시킨 후 정부에 인증을 받는 독특한 형식에 있다.

 

실례를 들어 과정의 처음부터 설명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NRW주에 위치한 도시, 겔젠키르헨은 과거 루르 석탄 공업단지의 가장 중심에 있었던 석탄 도시였다. 70년대 폐광이 된 후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태양에너지 분야. 북위 51도에 위치한 도시에서 얼마나 좋은 태양 일사량을 기대할 수 있을까마는 그들은 화석에너지의 상징인 석탄을 포기하는 대신 미래에너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를 도시의 새로운 상징으로 선택했다. (대구가 참여하는 세계태양도시총회(ISCC)에 독일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이 도시 한쪽에 위치한 비스마르크 로()에 새로운 주택단지가 계획되었다. 72세대가 지어질 이 주택단지를 소유한 두 건축주가 태양주택단지를 만들어 ’50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의기 투합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구 조건 중 두 가지 이상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우선 열 에너지 소비. 패시브 하우스 기준을 따를 경우 연간 15 kWh/, 그보다 약간 완화된 형태인 ‘3리터 하우스로 지을 경우 연간 35 kWh/㎡의 열에너지 소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온수 생산에 관한 것. 건물에 쓰이는 전체 온수 중 최소 60% 이상이 태양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져야만 한다. 추운 북쪽 지방의 특성에 맞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전기 생산에 관한 것으로 한 가구당 최소 1 kWp 이상의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를 만족했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인 특유의 꼼꼼함이 드러나는, 68페이지에 달하는 구체적인 요구조건이 명시된 문서의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주택단지의 지형은 어떠하며, 물 공급, 기후, 소음, 교통, 심지어 집의 방위까지 규정해 놓고 있다. 자연보호구역과는 최소 100미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기준도 있는데 열, 온수, 전력 소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새로 건설되는 주택단지의 경우 연 33kg CO2/, 기존 건물일 경우 40kg CO2/㎡ 이내여야만 한다.


(그림 1. 방위에 따른 열소비 그래프. 출처 : NRW 에너지 공사 www.energieagentur.nrw.de)

 


이 두 명의 건축주들은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킨 주택단지를 완성했다. 열 소비는 1995년 단열 기준에 비해 40~60% 가량 낮으며, 470 ㎡의 태양열 집열기에서 전체 온수의 60~65%를 생산하고, 80 kWp 용량의 태양광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전체 소비의 40% 가량을 자체 생산하는 주택단지를 만든 것이다. 더불어 빗물 재활용까지. 결국 주 정부로부터 ’50 프로젝트인증을 받게 되었다.

 

90년대 말에 시작된 이 50가구 주택 프로그램은 현재 어느 정도 달성되었을까?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 2,500가구가 입주한 27개의 주택단지 건설이 완료되었을 뿐이다. 추가로 26개의 주택단지가 건설중이거나 설계 단계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10년 동안의 달성률이 고작 50% 수준에 불과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이리라. 이 프로젝트는 결국 제대로 만들어진 주택단지에 정부 이름의 인증을 부여해 주민들이 마음 놓고 생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보다 빠른 시일 내에 목표한 50 단지를 완공하면 성과 측면에서야 좋기는 하겠지만, 실제 생활하는 주민들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인증을 위한 조건이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효과적이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는 시간에 쫓겨 날림으로 인증서를 남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처음 제시한 까다로운 원칙 그대로를 꾸준히 적용하는 것이 인증의 권위를 높이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림 2. 비스마르크 로()에 새로이 건설된 ’50 태양주택단지 프로젝트인증 주택단지. 출처 : NRW 에너지 공사 www.energieagentur.nrw.de)

 

이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이 궁금해졌다. 필자를 안내한 주 에너지 공사의 패트릭 위테만(Patrick Jüttemann) 씨는 뜻밖에도 예산이 거의 안 든다고 답했다. 고작해야 이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비용, 인증된 주택단지에 명패를 붙이는 비용, 그리고 새로이 인증을 신청한 주택단지를 심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전부라는 것이다. 정부 예산을 파격적으로 퍼부어 보기 좋은 결과물 몇 개 만드는 한국식 보급사업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반면 그 효과는 주택거래를 통해 여과 없이 증명된다. 집값이 다른 일반 주택에 비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택에 살고자 하는 주민들의 수는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주택단지는 에너지 소비량이 다른 집에 비해 현저히 적을 뿐 만 아니라 온수와 전력의 상당부분을 집에서 자체 생산하기 때문에 그만큼 에너지 관련 지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 정부의 까다로운 인증 시스템 탓에 태양주택단지 인증이 붙어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것만으로 최소 50% 이상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니, 웃돈을 주고라도 그 곳에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매우 간명하다. 치밀하게 기획된 정부의 정책은 예산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업에서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독일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준가격제도(또는 발전차액지원제도 / Feed-in-Tariff) 정책이다. 일사량이 적은 독일의 중부 도시에서 각 집마다 1 kWp 이상의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태양주택단지 인증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집값을 올리려는 이유뿐 아니라, 태양광 발전기 설치에 쓰인 목돈을 전력 판매를 통해 환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기 설치로 금전적인 이득만이 아니라 태양주택단지 인증을 받을 수 있다니, 건축주 또는 세대주 입장에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미 태양광 발전기에는 기준가격제도를 통한 일종의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태양광 발전기 설치를 위해 별도의 지원금을 또 배정할 필요가 없다. 독일 전역은 지난 2000년 기준가격제도를 골격으로 한 재생가능에너지법 시행에 발맞추어 설치비를 지원하는 보급사업을 모두 없앴다.

 

2009년 우리 정부가 태양광 발전기 보급사업에 배정한 예산은 자그마치 690억 원이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그 부작용은 이미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야심차게 진행한 그린빌리지에서는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기에서 공짜 전기가 얻어진다고 생각하여 에너지 소비가 되려 증가하는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가 나타나고 있고, 만에 하나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자비를 들여 태양광 발전기를 보수하는 대신 값싼 한국전력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다. 예산낭비에 자원낭비인 셈이다. 그린빌리지 준공식 사진 몇 장 찍어 언론에 홍보하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림 3. 제주 한 마을의 그린빌리지. 집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가 정부 지원금으로 세워져 있다. 사진. 염광희)

 

이 태양에너지 보급사업, 그린홈 100만호 프로젝트 보급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정부가 예산 탓을 들어 없애려 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에 투입한다면 태양에너지 보급량은 그만큼 증가할 것이다. 더불어 관련 산업 또한 동반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일사량 부족한 독일에서조차 태양에너지를 주요한 산업으로 선정해 육성하는 마당에 그보다 훨씬 좋은 자연조건을 갖고도 비효율적인 정책 탓에 예산은 예산대로 퍼부으면서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둬들이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 정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부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이라는 측면에서도 독일의 성공사례와는 반대로 역주행하는 우리의 보급사업을 반드시 점검해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글 : 염광희 활동가(환경연합)
      담당 : 환경연합 에너지기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