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너지정책 뒤집어보기

지연되는 경주 방폐장 안전성 의심된다

경주시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경주시의회는 지난 8월4일 오전 11시 경주역 광장에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는 방폐장 공사의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연 뒤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지역에 건설되는 중저준위 방폐장은 2005년 11월 경주시 주민투표로 부지 선정이 된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왔다. 2006년 1월 예정 구역이 지정 고시되어 부지특성 조사 용역이 체결되고, 동굴 방식으로 처분방식이 결정되었으며, 같은 해 말 종합설계 용역이 체결되어 1단계 건설기본계획안이 확립되었다. 2007년 1월에는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신청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제출했고, 7월 사업실시계획 승인이 떨어져 부지정지 공사에 착수했고 곧 착공식을 가졌다.

   
8월4일 경주시의회 의원들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방폐장 건설을 중단하라며 거리시위에 나섰다.
그런데 막상 공사에 착수하고 땅을 파보니 예상과 달랐다. 단열과 파쇄대가 예상보다 많은, 불량한 암반이 처음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공사는 지연되기 시작했다. 2008년 3월부터 진입동굴 굴착공사가 지연되더니 6월 시공 실적은 예정 공정률의 절반에 그쳤다. 지난 6월 초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은 방폐장의 완공 시기를 2년6개월 더 늦춰야 한다고 발표했다. 착공한 1년 만인 지난해 10월, 완공 시기를 6개월 연장한 뒤 추가로 이루어진 결정이다.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 7월에는 울진으로부터 핵폐기물을 시범 반입할 예정이었던 경주 방폐장은 공사 기간이 애초의 26개월에서 60개월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해당 부지를 조사한 것은 총 네 차례이다. 경주가 방폐장으로 적합한 부지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1차 조사는 주민투표가 있기 전, 2005년 4~8월 진행되었다. 두 번째로 처분방식을 결정하기 위한 보완 조사, 세 번째로 건설과 운영 인허가 서류작성을 위한 부지특성 조사, 네 번째로 상세 설계와 인허가 보완 조사가 있었다.

뒤늦게 공개된 부지조사 보고서


이 모든 보고서가 최근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던 중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에서 1~4차 조사 보고서를 확보했다.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보면 당시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한수원)는 경주 방폐장 부지 일대가 핵폐기물을 처분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지질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주가 방폐장으로 적당한지를 확인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부지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주민투표에서 아무리 높은 찬성률을 얻는다 하더라도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의미가 없다. 2005년 당시 부지선정위원회는 1차 부지조사 보고서를 보고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근거가 된 부지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공개된 부지조사 보고서는 부지선정위원회의 평가 결과와 다른 내용을 보여준다. 1차 조사에서 뚫은 시추공에서 보인 RQD(Rock Quality Designation) 값에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일종의 암질 평가값이라 할 RQD는 수치가 높을수록 시추공을 뚫은 암반의 회수율이 높아 양호한 암반임을 뜻한다. 회수율이 낮다는 것은 단열과 파쇄대가 많아서 회수되는 암석 양이 적다는 의미다. 당시 부지선정위원회는 “기반암의 RQD는 일부 구간에서 50% 이하로 관찰되나, 대체로 60~80%의 범위를 보임”이라고 하면서 “양호한 기반암 내에 처분동굴을 위치시키거나 공학적 보강을 통해 동굴의 구조적 안정성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1차 부지조사 보고서에서는 4개 시추공의 평균 RQD값이 21~31%로 낮은 값을 보인다. 부지선정위원회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보고서에 불량하다고 평가된 기반암을 양호한 것으로 잘못 결론을 내린 셈이 되었다.

그뿐 아니다. 방폐장 위치 기준에 대한 과기부 고시에 의하면 “처분장의 기반암 또는 지층은 균열이 많고 석회암이 존재하는 곳이어서는 아니된다. 처분장은 구조조직으로 동굴이 안정되고 강도가 큰 기반에 위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4개 시추공을 분석한 결과, 해당 부지는 균열도 많고 강도도 약할 수 있다고 의심할 만했다. 따라서 시추공 4개만으로는 암반 일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추가 세부조사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어야 한다. 지하수의 계절적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1년 동안은 관찰했어야 한다.

평가결과 왜곡 의혹도 일어


하지만 당시 산자부는 부지선정위원회와 주민투표 결과를 토대로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일대를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다. 이후 보완조사에서는 시추공 13개를 추가로 시행하고 처분방식을 동굴방식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를 보면 13개 시추공 중 3개를 제외하고는 매우 불량한 암반 상태를 보여주고 있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시추공에서 균열과 파쇄대가 발견되고 있다. 일부 보고서에서 원래 9등급인 암반 평가를 5등급으로 표시한 이유도 의문이다. 이로 인해 9등급 평가에서는 2~3등급으로 평가됐을 암반이 5등급에서 1등급으로 평가되는 등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공개된 부지조사 보고서를 보면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일대의 부지는 안전한 지역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최소한 300년은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지하수가 풍부한 이곳에 지진이라도 발생하면 지하수가 처분동굴 안으로 스며들 수 있고, 핵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을 부식시켜서 안에 담겨 있는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누출될 수 있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인근 땅속과 바다속 어떤 경로로 퍼질 수 있을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해당 부지는 지하수위가 높고 공사를 하는 지금도 하루 300~650t가량의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반경 8km 안에는 활성단층도 있어서 지진 가능성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높다. 방사성폐기물 관리공단과 한수원, 지경부는 활성단층은 인정하지만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다면서 원자력 부지 기준을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대 60년을 가동하는 원자력발전소와 최소 300년 이상 운영되어야 할 방폐장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지경부로부터 조사 의뢰를 받은 공기지연 진상조사단은 암반 상태가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성실 시공으로 노력하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공사 기간이 지연된 이유를 알아보는 조사를 2주간 하면서 방폐장 전체의 안전성을 장담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는 최소한의 부지 안전성을 확보한 뒤 공학적인 안전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부지 안전성 확보의 기본 원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지 안전성을 확보하기보다 경제적 보상을 앞세워 서둘러 결정한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이대로 계속 갈 것인지 판단이 필요할 때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공사기간도 더 연장되고 비용도 많이 들 수 있다. 방폐장을 지어놓고 나서 핵폐기물을 들여왔는데 혹여나 누출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확언할 수 있겠는가.

양이원영 대안정책국 부장
<이 글은 시사IN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