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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현장 소식

"환경 보호하니 오히려 경제 성장…성공 요인은 '의지'" [독일에서 본 녹색 성장⑥] 화석연료 '제로(0)' 도시 백스웨


▲ 백스웨 전경. 도시의 중심에 트루멘 호수가 위치하고 있다. ⓒ프레시안

환경 보호와 경제 발전의 관계는 무엇일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은 이 두 개념이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저렴한 전기 요금을 적용하고, 각종 환경 규제를 가능한 한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 경제 개발을 위해서라면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새만금 갯벌이든 정부가 정한 국립공원이든 가차 없이 없애는 경우도 있다.
백스웨(Växjö)라는 곳이 있다. 1674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8만 명이 사는 스웨덴의 한 자치 도시. 수도 스톡홀름에서 약 45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지난 2007년 총 110회에 걸쳐 1000여 명의 외지인이 백스웨 시청을 방문했다. 일주일에 두 팀 이상씩 방문했다는 계산이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화석연료 제로'를 선언한 이 외진 마을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 2007년 백스웨 시는 유럽의회로부터 '지속 가능 에너지 유럽상(Sustainable Energy Europe Award)'의 한 부문인 '지속 가능 공동체상'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백스웨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트루멘(Trummen)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호수 가장자리로 조깅을 할 수 있는 코스가 만들어져 있고, 한여름이면 많은 시민이 호수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시민을 품어주는 일종의 구심점인 것이다.

지금은 매우 맑은 이 호수도 한때 심각한 문제에 쳐해 있었다고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나온 공업 폐수와 시민들이 배출한 생활하수 때문에 심각하게 오염되었던 것. 위기가 기회를 만든다는 말은 이런 때 써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백스웨 시민들은 이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악취가 나는 도시 중심의 호수를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백스웨의 시정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이 호수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이런 과정에서 환경과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후 벡스웨는 1996년 '화석 연료 제로(Fossil Fuel Free)'를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 도시를 스웨덴 내 최고의 기후변화 정책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현재의 투루멘 호수(왼쪽). 호수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시민(오른쪽). ⓒ프레시안

화석연료 제로 도시를 향한 도전

이들의 목표는 2050년까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간 목표로 내년인 2010년까지 화석연료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7년 현재 이들은 이미 54%의 전체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얻고 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도시는 목재를 이용한 지역 냉·난방 시설 보급, 저에너지 주택 단지 건설, SAMS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 가동, 모든 버스에 바이오연료 사용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다.

▲ 백스웨와 스웨덴의 온실가스 배출, 경제 성장 그래프. ⓒ프레시안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화석연료 제로를 선언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효과를 얻고 있을까. 결과는 경제는 성장했고 온실가스는 줄었다. 믿기지 않는 결과다. 환경과 경제 발전이 양립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이 작은 도시는 보여주고 있다.

스웨덴 정부가 2020년까지 화석연료 제로를 선언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물론 이 계획에 원자력이 포함돼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스웨덴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허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 백스웨의 화석연료 제로 정책을 설명하는 요한 에릭슨(Johan Erikson) 백스웨시청 국제 홍보 담당관. ⓒ프레시안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은 이 작은 도시 백스웨는 스웨덴의 야심찬 계획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이다. 1993년과 비교해 지난 2005년까지 스웨덴이 국가 전체적으로 8%의 이산화탄소를 줄인 데 비해 이 작은 도시에서는 4배나 많은 32%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경제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된다. 32%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안 약 50% 가량의 지역총생산(GRP)이 증가한 것이다. 인구가 적은 시골 마을이라 특별한 경제 활동도 없을 것이란 어림짐작은 마시라.

이곳 백스웨에는 약 8000개의 중소기업, 400개의 IT 기업뿐만 아니라,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알루미늄 제조 공장 및 볼보, 샤브 등의 중대형 자동차 제조 공장도 위치해 있다. 이 시에서는 기업 유치와 관련해 6개의 중점 클러스터를 선정해 육성하고 있는데, 중대형 자동차 제조, 알루미늄 등이 포함될 정도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다.

물론 이 여섯 개의 중점 분야 중에 '기후 보호 밸리(Climate Protection Valley)' 또한 자리 잡고 있어서, 이 시에서 실험 중인 다양한 화석연료 제로 노력을 비즈니스화하는 노력 또한 진행 중에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이들의 전략은 바로 지역(local)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지난해부터인가 녹색연합에서 '동네 에너지'라는 친숙한 개념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백스웨의 성공은 이 동네 에너지의 적극적인 활용에서 찾을 수 있다.

지역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어딘가에서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데, 그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각국의 정상들이 '에너지 안보'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기도 하다.

이들의 동네 에너지는 바로 나무다. 하기는 스웨덴 하면 나무의 나라 아닌가. 백스웨 또한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다. 이곳의 폐목재 부산물을 이용해 전력도 생산하고 지역 냉·난방에 이용하고 있다.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산트빅(Sandvik) 열병합 발전소는 1887년 세워진 이래, 100여 년이 넘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현재까지 지역에 열과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아래 도표에서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70년대 말까지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던 이 발전소는 이후 목재 바이오매스 연료로 순차적으로 전환하게 된다. 결국 최근에는 전혀 석유를 사용하지 않고 지역에서 얻어지는 재생 가능 에너지에 의존하는 열병합 발전소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 열과 전기를 만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백스웨의 동네 에너지 목재 바이오매스. ⓒ프레시안

▲ 산드빅 열병합 발전소의 연료 사용 변화 추이. ⓒ프레시안

각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나 슬러지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이를 발효시켜 바이오가스를 생산해 차량에 주유할 계획도 갖고 있다.

화석연료 제로를 선언한 이들의 계획은 단지 에너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전기나 열, 차량의 연료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화석연료 소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역점을 두고 추진할 미래의 사업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현재의 관행 농법이라는 것이 석유 없이는 경작이 불가능한 석유 농법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운송하기 위해서는 바이오연료를 이용하지 않는 한 결국 화석연료인 석유나 가스에 의존해야만 한다.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으로 지역 농산물을 재배하고 지역 주민들이 이를 소비하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 나무 목재를 주 재료로 지어지는 에너지 저소비 주택 단지. 공사 중인 모습과 완성된 후의 모습. ⓒ프레시안

동시에 이들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혹시 집을 짓는 재료인 시멘트가 그 생산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알고 있는가. 시멘트 생산을 위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나무의 나라 스웨덴 백스웨는 나무집을 지어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또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인 SAMS 프로젝트를 시작해 다양한 에너지 절약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SAMS 프로젝트의 카피가 재미있다. Interaction creates energy efficiency. 상호작용이 에너지 효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사업 중 하나가 에너지 소비 계량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다스컨설턴트(www.dasskorea.com)라는 국내의 한 에너지 벤처회사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이것은 사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 에너지 계량기를 설치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전부다.

고작 '계량기 하나 부착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놀랍다. 이 기기의 설치로 인해 24%의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에너지 계량기와 자주 '접촉'함으로써 자신의 에너지 소비가 어느 수준인지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에 놀란 소비자는 자연스레 소비를 줄일 것이고. 이 계량기 하나가 소비자 행동의 변화를 유발해 4분의 1 가량의 에너지 절약이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 계량기 사용에 따른 효과를 나타낸 그래프. 오른편은 이 프로젝트에 사용된 계량기. ⓒ프레시안

다른 프로그램은 시민들과 함께 다양한 게임을 하는 것이다. 가령 중·고등학생들로부터 에너지 절약 게임을 위한 신청을 받고, 신청자들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 '지령'을 하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화면 보호기 설정하기' 이라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은 임무를 완수한 후 휴대전화로 답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임무 완수를 '보고'한다. 학생들이 참여한 만큼 에너지는 절약될 것이다. 성인을 대상으로는 매월 에너지 사용량를 점검해 가장 절약을 많이 한 가정에 매월 영화티켓 등을 선물하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관리공단에서도 과거 이를 시행했던 적이 있다.) 선물뿐만 아니라 전력회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는 효과 때문에 영화티켓 이상의 경쟁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 이 회사와 경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우리는 백스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백스웨에서 희망 하나를 발견한다. 환경과 에너지 문제의 해결이 지역 공동체의 발전과 소통을 함께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환경은 점점 더 좋아지고 경제 또한 성장한다.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우리는 숙제 하나를 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 내가 사는 공동체를 어떻게 바꾸고 가꾸어야 하는가 하는 숙제 말이다.

첨언 ; 외국의 재생 가능 에너지, 동네 에너지 사례를 언급할 때 많은 분들이 되묻습니다. 우리의 자연 조건은 분명 그들과 다르지 않느냐고, 독일과 덴마크의 풍력 자원은 분명 우리와 다르고, 스웨덴의 바이오매스 자원은 분명 우리 것과 비교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때문에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지적해 주십니다. 일견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재생 가능 에너지와 관련해서 한국은 에너지 빈국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독일의 경우 우리보다 일사량이 30%나 적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매우 큰 차이입니다. 우리의 풍력자원이 독일에 비해 부족해 보일지는 몰라도 스웨덴의 내륙 지역과 비교한다면 우리의 잠재량은 상당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백스웨를 성공으로 이끌었을까요? 포괄적으로 얘기하자면 아마도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염광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출처: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