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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현장 소식

"이명박 대통령, '삼쇠 섬의 기적'을 아십니까?" [독일에서 본 녹색 성장⑤] 삼쇠 섬의 에너지 독립

지구가 단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별 안에 6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옹다옹 부대끼며 살고 있다. 지구는 완벽한 하나의 계(system)이다. 태양과의 소통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폐쇄 시스템이다. 거칠게 얘기하면, 햇빛을 제외한 그 어느 것도 우주에서 지구로 유입되지 않고, 복사열을 빼고는 그 어느 것도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공급되는 태양 에너지를 제외하고는 지구라는 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다. 지구온난화나 석유 고갈 위기가 닥치기 전엔 말이다.

한 섬의 실험

덴마크에 위치한 삼쇠(Samsø) 섬은 우리나라 안면도보다 조금 큰 114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인구 약 4000명 2500가구가 모여 사는 아주 조그마한 섬이다. 이 섬은 섬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섬에서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에너지 독립 섬이다.

지난 1997년 덴마크 정부는 각 지역에 에너지 자립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어떤 지역에서든 재생 가능 에너지로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꾀하는 계획을 만들고,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지역을 선정해 약간의 지원을 하는 사업이었다. 삼쇠 섬을 비롯한 5개의 지역에서 신청을 했고, 그 중 이 섬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본격적인 삼쇠 섬 에너지 독립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해 10월 삼쇠 섬이 최종 대상지로 선정된 후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현재까지도 그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삼쇠 섬은 에너지 독립에 성공했다.

▲ 삼쇠 섬 내륙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 ⓒ프레시안

▲ 삼쇠 섬 해상 풍력 발전기. ⓒ프레시안

풍력 발전기의 나라, 덴마크답게 이곳 삼쇠 섬에도 풍력 발전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섬 안에 11기, 섬 밖 해상에 10기의 풍력 발전기가 쉴 새 없이 전기를 만들어낸다. 쉽게 표현하자면 내륙의 11기는 섬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고 해상 풍력 발전기는 섬에서 사용하는 열, 교통, 심지어 섬과 내륙을 이어주는 배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렇다고 풍력 발전기 전기로 열과 교통에 필요한 연료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소비되는 양과 생산하는 양을 같은 단위로 환산해 비교한 것이다)

얼핏 보면 풍력자원이 좋은 섬에서 단지 몇 개의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 에너지 독립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섬에 설치된 모든 발전기는 제 주인이 따로 있다. 마냥 정부의 지원금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내륙에 설치된 발전기의 경우 9기는 각자 주인이 따로 있고, 두 기의 경우 약 430명의 지역 주민이 참여한 시민발전소 형태로 건설되었다.

쉽게 얘기하면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출자금을 내어 공동 투자 형식으로 발전기를 세운 것이다. 풍력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팔아 얻어지는 수익은 당연히 이 430명의 참여자에게 지분에 따라 배분된다. 최근 한국에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시민발전소 개념과 같은 것이다.

내륙에 발전기를 설치한 지역 주민들은 또다시 해상 풍력 발전을 시도하게 된다. 그들의 고민은 에너지 독립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수송 에너지를 자립하는가에서 시작되었다. 내륙에 설치한 풍력 발전기로는 전력 자립을 달성했지만, 수송 에너지는 도무지 해법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소비하는 에너지만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풍력 발전을 선택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바다 위에 풍력 발전기를 세우기로 했다. 내륙에 비해 바람이 좋아 전력 생산에 따른 수익을 더 많이 기대할 수는 있지만, 바다에 발전기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설치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단점 또한 있는 사업이었다.

총 10기의 건설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으나 결국 비용이 문제였다. 시민들은 삼쇠 시청을 찾았다. 작은 섬에서 시청의 재정이라는 것이 어떠한 사업에 '투자'할 정도의 여력이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설득과 에너지 독립 섬을 향한 시청의 의지가 더해져 결국 '무리한 투자'를 감행하게 된다. ('지원'이 아니라 엄연한 '투자'다. 전기를 팔아 나오는 수익은 당연히 시청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총 1억2500만 덴마크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310억 원)를 투자해 여전히 8000만 크로네를 상환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6~7년 후면 전액 상환이 가능하고 그 후에는 1년 약 1000만 크로네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쇠 섬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의 의미

이 섬의 모든 주민들은 재생가능에너지가 무엇인지 안다. 전문가들처럼 그 원리가 어떻고 효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가 무엇을 말하고 이 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두가 안다. 삼쇠 섬의 에너지 독립이 전 세계로 알려져 이를 직접 살펴보려는 외지인, 외국인들의 방문 덕분에 이들의 자긍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가령 얼마 전에는 덴마크에 주재하는 90개국의 대사들이 이 섬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이 섬 주민뿐만 아니라 덴마크 정부가 나서서 이 섬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명품'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 트란버그 씨 농장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 ⓒ프레시안

요겐 트란버그(Jørgen Tranberg) 씨는 150마리의 젖소를 키우는 축산 농민이다. 1메가와트(㎿)짜리 풍력 발전기를 9년 전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설치했다. 덕분에 1년에 약 2억 원 정도의 짭짤한 부수입까지 올리고 있다. 그는 43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발전 조합의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을 정도로 삼쇠 섬의 에너지 독립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얘기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역사는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6년 전 덴마크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도시의 시민이나 지역의 농민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반대하면서 그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풍력과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섬 삼쇠에서 별다른 기폭제가 없어 간혹 소형 풍력 발전기를 이용하는 작은 규모의 '실험'에 그쳤던 것이, 1997년의 에너지 독립 프로젝트 공모 당선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게 되었고 결국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심을 방증하는 것이 닐슨 할아버지다.

▲ 20년이 더 된 풍력 발전기도 삼쇠 섬에서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귀한 보물이다. ⓒ프레시안
올해 81세인 이 할아버지의 집은 마치 만물상 같다. 할아버지 나이와 비슷한 오토바이가 있고 여기저기서 주어온 고물이 할아버지의 손을 거치면 감쪽같이 제 기능을 발휘한다. 맥가이버 할아버지인 셈이다. 이 할아버지는 섬 어딘가에 버려진 29년 된 풍력 발전기를 헐값에 가져와 작년 여름, 집 앞에 설치했다. 맥가이버 할어버지 손을 거친 풍력 발전기는 아무런 문제없이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전기는 1킬로와트시당 0.6 덴마크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150원)를 받고 전력회사에 팔리고 있다.

마을의 풍력 발전기 유지 관리를 맡고 있는 청년의 집 마당에도 55킬로와트 규모의 오래된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1986년 제품으로 다른 섬에 설치되었던 것을 중고로 가져와 자기 집에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삼쇠 에너지 아카데미

이 역사를 실질적으로 만든 이들은 4000명의 삼쇠 섬 주민들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주민들과 대화하며 온갖 궂은일을 맡아 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삼쇠 섬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주민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바로 '삼쇠 에너지 아카데미'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총 5명의 풀타임 스탭이 활동하는 이 조직은 새로운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할 뿐만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각 연령에 적합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요청이 있으면 대학 수준의 교육까지도 가능하다고 이 단체를 이끄는 쇠뢴 헤어만센(Søren Hermansen) 씨는 얘기한다.

▲ 삼쇠 에너지 아카데미 전경. ⓒ프레시안

이들은 삼쇠 섬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전기뿐만 아니라 열의 자립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997년 섬에서 필요한 열의 25% 가량만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공급되었던 것이 2005년 그 비중이 65%로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같은 기간 열의 소비는 10% 가량 줄었다.

대표적인 것이 220가구에 지역 난방을 공급하는 바이오매스 이용 시설의 기획이다. 삼쇠 섬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부산물인 짚단을 태워 열을 얻고 그 열을 각 가정에 공급하는 지역난방 시스템이 그것이다. 700킬로그램 무게의 짚단 한 뭉치는 300~400리터의 석유를 대체한다고 한다. 온실가스를 전혀 내뿜지 않는 환경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가격에서도 10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태양열을 이용한 지역난방, 그리고 지역난방 혜택을 받기 어려운 분산된 가정을 위해 겨울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단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단열 개조 작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마치 현재의 에너지 독립에 머물지 않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수출까지 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지역 난방에 이용될 짚단. 한 뭉치가 석유 300~400리터를 대신한다. ⓒ프레시안

▲ 열을 만들어내고자 소각로로 향하는 짚단. ⓒ프레시안

그들은 에너지 독립이 가능했던 그 힘을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덴마크 특유의 조합 전통에서 찾는다. 지역 공동체를 위해 지역 주민들 스스로 나서서 협심해 일을 해결했던 그 전통이 지금의 에너지 독립 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지원금이 있든 없든, 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에너지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에너지 전문가를 양성해 섬의 모든 가가호호를 방문해 무료로 에너지 진단을 해 주는가하면, 새로운 에너지 시설의 신축이나 각 가정의 단열 개선을 위한 공사에 삼쇠 섬에 거주하는 목공이나 건축가, 전기기사 등 지역 전문가의 우선 참여를 보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역 주민들 모두는 삼쇠 섬의 에너지 독립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규모도 작은 한 섬에서 에너지 독립에 성공한 것이 왜 이슈가 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지구라는 별 자체도 하나의 섬이기 때문이다. 작은 섬이 에너지 독립을 이룰 수 있다면 지구라는 거대한 섬도 에너지 독립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분단된 상황 때문에 대륙에 접해 있으면서도 섬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지 않은가.

'녹색 성장' 타령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꼭 삼쇠 섬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


/염광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출처: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