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너지정책 뒤집어보기

핵재처리 밀어붙일 일 아니다. 4대강 전철 밟으려나...

핵재처리, 밀어붙일 일 아니다
4대강 사업 전철 밟으려나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졸속추진으로 국민적 반대에 부닥쳐 있는 지금, 그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또 하나의 사업이 밀어 붙여지고 있다. 이 일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할 만큼 중대한 일이다. 바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달 12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세계원자력정상회의 개막연설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를 자원으로 재활용하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선진 핵연료주기기술을 개발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핵연료 재처리라는 중대 문제를 마치 기정사실처럼 가볍게 선언해 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현장방문으로 극적 효과를 극대화한 지난 연말 아랍에미리에이트 원전 수주 이후, 지금 우리 사회엔 원전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수주 발표 두 주일 후인 1월 12일 정부 비상경제대책회의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원전 80기를 수출해서 세계 3대 원전 선진국이 되겠다고 선포했다. 한전이 202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발표한 지 두 주일도 안 돼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 수출로 목표를 상향조정한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 지자체들도 원전사업 경쟁에 나섰다. 울산은 원전관련 기업과 대학 등을 유치하는 ‘원전 메카’ 조성에 16조원을, 경북도는 ‘원전 클러스터’에 7조79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4대강 사업 전철 밟으려나

이 때 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재처리’ 주장이 등장한다. 지난 20년간 국내 원전 운용으로 보관 수조가 포화상태에 이른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원전 연료 확보에 기여하고, 폐기물 처리 문제도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연구를 계속하고자 하는 원자력공학 관계자들의 학문적인 욕구, 막대한 건설비용과 관련된 업계의 이해관계, ‘원전 강국’에 매료된 정치가들의 야심이 얽혀 있다. 게다가 보수언론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일본도 재처리에 성공해 핵주기를 완성했는데, 우리라고 재처리를 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핵 주권론’으로 여론을 자극한다.
문제는 ‘재처리’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원자력이 과연 깨끗한 에너지인가,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제쳐 놓자. 경제성, 이른바 ‘국익’ 차원에서 따져도 결코 이득이라 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간단하게 재처리라 하지만, 재처리한 핵연료가 다시 사용되려면, 재처리공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라늄 농축공장, 혼합산화물(MOX) 가공공장, 초우라늄(TRU)의 중간처분,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 등의 시설이 필요하다.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장정욱 교수에 따르면, 그것들을 갖추는 데 48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리라고 한다. 1993년 착공한 일본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본래 2006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무려 17차례나 연기돼 올 10월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 그사이 건설비용은 당초 7000억엔에서 그 3배인 2조2000억엔(약 26조원)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재처리라 하지만 고속증식로를 실용화하지 않는 한 사용후 핵연료의 1%를 플루토늄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비공개자료는 재처리가 직접처분 방식의 약 4배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계산했다. 이런 비효율성과 위험성 때문에, 미국은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처분장에 묻어버리는 직접처분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독일 벨기에 스페인도 재처리를 포기했다.

위험하고 돈먹는 애물 될 수도

이렇게 엄청난 문제이기에 지난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에 따라 지난해 8월 공론화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이 내정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위원회 출범 1주일을 앞두고 공론화 과정은 중단됐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을 논의하는 대신, 재처리라는 외길몰이에 들어간 것이다.
착공 이후 더 큰 반대에 부닥친 4대강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사용 후 핵연료 처리문제는 공개적으로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더구나 이건 4대강 사업보다도 몇배나 더 엄청나고 또 위험한 일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지영선 환경연합 공동대표

* 이 글은  4월 7일자 내일신문 <지영선의 녹색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