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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일기

법원을 통한 환경문제의 해결과 환경단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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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출처 : "일제 강제징용, 한국법원이 재판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법치주의(rule of law)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현대국가의 기본적 구성원리이다. 짧은 미국생활이지만, 미국에서는 법치주의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미국 공무원들은 사소한 의문만 있어서도 꼭 규정을 일일이 확인하고 일을 처리한다.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도 규정에 근거가 없으면 요지부동이다. 때로는 융통성이 너무 없고 일처리가 느려서 ‘복지부동 공무원이 미국에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법치주의가 말단 행정기관에서도 실천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국가조직 중에서 법치주의의 보장을 주요 사명으로 하는 있는 기관은 사법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판결건수가 일 년에 100건에도 이르지 않는다(미국 연방대법원 전체의 1년 처리건수는 우리나라 대법관 1인의 2008년도 한 달 처리건수 181.4건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언론으로부터도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연방대법관을 새로 충원하는 경우 많은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으며, 판결이 나올 때마다 언론기관들은 상세한 분석과 향후 파장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우리나라 대법원보다 훨씬 적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훨씬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는 것은 미국 대법원의 정책결정기능 때문일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적은 수의 사건에 대하여만 의견을 내놓으나{대부분의 사건에 대하여는 심리불개시결정(denial of certiorari)을 한다} 내놓는 의견마다 국가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낙태처벌법규의 위헌성을 선언한 Roe v. Wade 판결(1973년)이 있은 이후로 의회도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법부의 정책결정기능에 대하여는 미국 내에서도 찬반이 있으나 아무튼 미국 사법부의 막강한 영향력은 찬반론자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극히 소수의 사건에 대하여만 의견을 냄으로써 입법부와 행정부의 영역을 가급적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환경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미국 법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최근 중요한 환경관련 판결들을 내놓고 있다. 환경단체들의 잇따른 공익소송의 제기 및 환경문제전문가들의 연구로 인하여 환경문제가 국가적 이슈로서 논의되자 미국 연방대법원도 환경사건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법원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송의 제기가 있어야 한다. 소송에도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소송이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서는 소송권(재판청구권)의 보장이 필수적이다. 재판청구권이 보장되어야 사전적으로 합법적인 행정처리가 이루어질 것이고 사후적으로도 행정에 대한 합법성 심사와 시정조치가 뒤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여서는 아니된다. 재판제도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실익이 없는 소송의 제기는 허용되지 아니하고 법률상 이해당사자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이해당사자만이 소송을 제기할 있게 하면 곤란한 점이 발생한다. 환경침해로 인한 이해관계는 널리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만큼 직접적이고 커다란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을 발견하기 어렵고, 설사 개인이 환경소송을 제기하려고 해도 소송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막대한 비용 앞에 좌절하기 쉽다. 따라서 국민의 환경적 이익을 대변할 공익단체가 필요하다. 전문지식과 자금을 갖춘 단체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환경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고, 소송제기가 없으면 법원 내의 공론을 통한 환경문제의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에 제기된 대부분의 환경소송에서 환경단체가 원고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문제가 되는 환경이익의 옹호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환경단체라면 미국 소송법상의 원고적격(standing)을 갖고 있다고 판시해 왔다. 환경단체의 원고적격을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환경문제를 법원의 마당으로 끌어들여 공론을 벌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 법원도 소위 ‘도룡뇽’ 사건에서 자연물인 도룡뇽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도룡뇽의 친구들’이라는 환경단체의 당사자능력을 인정함으로써 환경단체가 환경소송을 제기할 여건을 마련해 놓았다. 앞으로 우리 법원이 환경단체의 행정소송상 원고적격을 널리 인정하여 법원에서 활발한 공론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법정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길거리에서 실력행사를 하는 것보다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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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박항구 기자



결국 환경단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환경단체가 과학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환경법리를 더욱 연구하여, 이를 토대로 환경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야 하여 국민의 환경권 옹호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 글을 쓰신 박덕희 변호사님은 광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