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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보고서

태양은 여전히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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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군기지 예정지인 강정마을에서 본 2010년 새해 일출 ©양이원영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생산력에 따른 생산관계의 변화를 변증법적 투쟁의 과정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왕족과 귀족 등 지배계급의 권력 강화나 새로운 지배계급의 출현 과정을 집단 간 권력다툼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이런 역사 서술은 인간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생산력의 발달을 살필 때, 인간 외의 자연이 고려되기는 하지만 중심은 개별 인간들이나 인간집단들이다.

그런데 '태양의 아이들'은 '에너지'라는 새로운 도구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한다. 인류가 에너지를 확보하는 욕망의 역사를 그렸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생산력도 아닌 태양에서 지구로 온 에너지를 인간 사회 속으로 끌어들인 과정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생산관계를 변화시킨 생산력도 결국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결국, 인류는 태양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에너지를 인간의 것으로 만드는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찾아내고 발명했느냐에 따라 '인간'이 될 수 있었고, 지금과 같은 산업과 문명, 생활방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에너지'라고 하면 발전소와 전기를 떠올리기 쉬운 우리 일반인들은 어떻게 인류의 출발이 에너지 확보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는 지 의아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처음을 '불'로 봤다. 유인원이 다른 동물과 다른 차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불의 문화', 그 중에서 '익혀먹기'로 들고 있다. 익혀먹기를 통해서 소화과정의 일부를 몸 밖에서 진행하면서 소화가 가능한 유기물의 범위가 넓어졌고 우리의 직계 조상의 뇌는 커졌고 이빨과 소화기관은 작아졌다는 가설을 소개했다.

'불'이야 말로 태양에너지를 가장 쉽게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태양을 피할 수 없다. 아낌없이 쏟아지고 있는 이 태양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체내에 축적하는 방법을 식물들이 알고 있다. 광합성을 통해서 무기물이 유기물로 전환되는 과정이 태양 에너지가 축적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유기물에 축적된 태양에너지가 공기와 빠른 산화를 하면서 열에너지로 방출되는 과정이 '불'이다. 광합성은 30억 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인류의 조상은 수 백만 년 또는 수 십만 년 전에 생물체 속에 저장된 이 에너지를 '불'이라는 형태로 끄집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는 기후 등의 환경의 변화로 수렵, 채취보다 태양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농업'을 선택했고 이로써 더 좁은 땅에 더 많은 사람들이 군집생활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협력과 계획의 수립, 체계가 필요해지는 등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제 인류는 식물에 축적된 태양에너지가 오랜 시간 동안 압축되어 에너지밀도가 높아진 새로운 연료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석탄과 석유가 그것이다. 4리터의 휘발유는 90톤의 식물, 즉 바이오매스가 내는 에너지를 낸다.

석탄을 처음 사용한 유럽인들은 애초에 어둠을 밝히는 고래기름을 대체하는 석탄가스를 생산하는 정도로 석탄을 이용했다고 저자를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석탄에는 더 중요한 역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석탄에 오랫동안 축적해왔던 태양에너지는 증기기관을 통해 인간을 대신하는 동력으로 전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석유의 에너지밀도는 석탄보다 50%가 더 높다. 저장과 수송도 훨씬 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연기관의 탄생은 자동차와 석유에 중독된 현대사회를 만들어 냈고 전쟁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더 많은 것, 더 편리한 것, 더 밝은 것을 갈구하는 인간은 석유와 석탄에 저장된 태양에너지를 발전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전기에너지는 먼저 전신, 전화로 대서양을 없앴으며 아메리카를 횡단했다. 결국 세계의 거리를 좁혀놓아 마치 대륙들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이때부터가 세계화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전구의 발명으로 인류는 밤을 지배했고 연이은 전기모터의 발명으로 전철을 비롯한 전기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이자 전기의 시대였다.

저자는 인류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강력한 에너지를 원하면서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지구상에 태양을 복제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현 석유시대가 끝나고 나면 어떤 에너지 시대가 올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이 핵분열과 핵융합에너지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이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분석이 빚은 오류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전제로 더 막강하고 많은 에너지를 찾는 데에만 열중하다보니 에너지 탐구의 새 시대가 열리는 이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에너지와 기존의 에너지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비약한 느낌이다. 기존의 에너지는 지구 상에, 자연 상에 존재하던 에너지들이다. 그리고 그 원천은 모두 태양에서 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식물(바이오매스)이 가지고 있는 유기물의 화학에너지, 이것이 압축된 석유, 석탄 역시 태양에너지가 화학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수증기의 증발로 높은 곳으로 이동한 수력의 위치에너지, 불균등한 데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바람에너지도 태양에너지의 다른 형태다. 전기에너지는 이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해서 발전기를 돌려 만드는 2차 에너지다. 하지만 이미 광합성 과정에서 전자의 이동 즉 전기에너지가 역할을 하고 있다. 엽록소 같은 색소가 태양에너지를 전자로 전달하고 활성화된 전자의 이동으로 이산화탄소가 환원되면서 유기물질이 만들어 진다. 넓게 보면 태양광 전지판은 광합성의 일부를 본 딴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핵분열 에너지는 지구 상의 자연현상이 아니다. 방사성동위원소가 일부 존재하기는 하지만 물질의 기본 단위는 원자로서 지구의 모든 물질들은 안정화되어 있다. 화석연료 연소의 과정은 모였던 원자들이 흩어지는 과정이다.

원자 중심에 있는 핵이 분열되는 것은 지구상에서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다. 핵의 구성입자 중 하나인 중성자를 이용해서 핵을 무리하게 분열시키게 되면서 우주상에 가장 강력한 핵에너지가 방출된다. 그 결과 지구상에 없던 새롭고 매우 불안한 원소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죽음의 신의 이름을 딴 플루토늄이 있다.

핵분열이나 핵융합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특히 핵융합은 태양의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로써 태양계는 태양에서 보내오는 에너지를 누리게 되고 우주는 방사선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식물의 광합성 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오존층과 대기권이 우주의 방사선으로부터 지구의 생명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구상으로 가지고 와서 이 방어막 안에서 생명을 파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 인류에 대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수 십만 년 이상 핵붕괴를 계속할 대량의 방사성물질을 만들어 후세대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이 얼마나 반생명적이며 무책임한 행동인가.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다 보니 악마와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 에너지 탐구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사고의 전환이 되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었다.

사실, 핵융합은 태양과 같은 조건을 지구 상에서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수십조의 비용을 들여서 현재까지 달성한 것은 1/3초 동안 유지시킨 정도다. 태양의 중심에서 핵융합이 지속되는 이유는 섭씨 1천만도의 온도와 지구 등 항성들을 붙잡아 둘 만큼의 어마머마한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지구상에 구현하는 자체가 위협적이다. 태양은 머리 위 우주 공간에 있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지구상에 태양을 구현하려고 하는 것은 에너지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몰입해서 지구 자체를 멸망시킬 지옥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인류 에너지 욕망의 역사는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동안은 태양이 보내고 저장해 둔 에너지를 무작정 쓰는 데 바빠서 '양'을 걱정하지 않았다. 더 많은 양의 석탄과 석유를 채굴하면 그만 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계에 맞닥뜨렸다. '양'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바닥이 드러나는 우물을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비가 오면 다시 우물은 찰 것이다. 태양은 여전히 우리에게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 고밀도 화석에너지가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 머리 위엔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다. 문제는 '효율'이다. 석탄 시대에 증기기관의 효율은 6%였다. 석유시대의 내연기관 중 최대효율을 내는 디젤기관은 기껏해야 30%다. 태양이 오랜 동안 저장해둔 에너지를 쓰면서 70~90%는 그냥 버려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에너지를 유기물인 화학에너지로 전환한 광합성의 에너지 효율은 얼마일까? 최대 효율은 95% 이다. 이제 더 많은 '양'이 아니라 높은 '질'을, 높은 '효율'을 위한 인류의 에너지 탐구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발판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몽상이 아니라 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태양에너지와 내 주변에 초록생명들이다.

글: 양이원영

-환경과 생명 62호에 실린 서평입니다-